始祖 石鄰
충주•홍주석씨(忠州•洪州石氏)의 시조(始祖) 휘(諱) 린(鄰)은 '경인보(庚寅譜)'에 의하면 본시 중원대륙에 사셨다. 송(宋)이 만주의 금(金)이 남하해 옴에 따라 쫓기어 양자강 남쪽으로 옮겨갈 제 공(公)이 태산(泰山)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 고려(高麗)로 건너오셨다.
고려 의종(毅宗) 24년 경인(庚寅, 西紀1170年)에 발생한 경인난(庚寅亂) 당시 이의방(李義方)을 따라 서경(西京, 지금의 청주(淸州))에서 무신난(武臣亂)에 참여하여 서경낭장(西京郎將)이 되었다. 경인난(庚寅亂)이라 함은 당시의 무신(武臣)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이 일으킨 쿠데타로 문신(文臣)을 살해하여 무신정권(武臣政權)이 들어선, 이른바 무신정변(武臣政變)이다. 공(公)께서는 힘과 무예(武藝)가 출중하여 이들에게 발탁되었다.
명종(明宗) 6년 병신(丙申, 西紀1176年)에는 평양유수(平壤留守) 조위총(趙位寵)이 무신정권을 타도코자 반란을 일으키니 두경승(杜景升)과 함께 평안도에 출정하여 반란을 평정하고 대공을 세우시니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되셨다.
이후 거듭 상장군(上將軍)에 오른 뒤 예성부원군(蘂城府院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충주(忠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예성(蘂城)은 충주(忠州)의 옛 이름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석린(石隣)으로도 쓰였다.